김동연 광주 무등산서 '노무현 정신' 외치다 - 광주 경영자총협회 초청 강연 이유 1박 2일 일정 광주방문 |
| 2025-02-16(일) 1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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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경영자총협회 강연 초청으로 지난 13일 1박2일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한 김동연 경기지사가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니다"며 (대선에) 이기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것이고 이기는 길은 노무현의 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길은 제7공화국 개헌이 될것입니다" 라며 분권형 4년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김동연 지사는 국립5.18 민주묘지를 참배한후 지역 기자들에게 14일 예정된 광주 경영자총협회 초청 강연을 방문 이유로 들었지만 1박 2일의 일정을 준비한 데다, 2007년 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의 '노풍' 진원지 광주에서 '노무현 길'을 걸으며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직격, 지역 정가에서는 공식적인 대선 출정 행사로 보고 있다.
이날 오전 7시 국립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면서 광주방문 일정을 시작한 김 지사는 방명록에 "광주의 영령이시여 내란을 종식하고, '이기는 민주당'으로 제7공화국을 열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라고 적었다.
5.18 민주항쟁추모탑을 찾아 헌화와 분향, 묵념을 한 뒤, 5·18 시민군 고 윤상원 대변인과 경기도 출신 5·18 희생자, 고 이한열 등의 묘소 등을 찾아 참배하고 5·18 구묘역에 설치된 '전두환 비석'도 밟았다.
이후 지역 언론인들을 만난 김 지사는 "내일 (광주)경영자총협회 강연 요청이 있어서 왔다"며 ".(최근)우리 광주 시민 여러분들께서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더 큰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의 초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니고 민주당의 이재명, 민주당의 김동연, 민주당의 김경수, 민주당의 김부겸, 다 같이 이렇게 '더 큰 민주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재명 대표를 겨냥했다.
또 "정권교체만으로는 안된다. 이번 계엄과 내란을 막기 위해서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가지고 우리 시민들이 나왔듯이 이제는 '빛의 혁명'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우리 빛고을 광주에서부터 그런 '빛의 혁명'을 끌어내는 연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7공화국에는)새로운 헌법, 개헌이 필요하다"면서 "45년 전 민주화운동의 촉발이 됐던 광주 정신을 헌법전문에 포함시켜야 되겠고, (비상)계엄의 요건을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위헌적 불법적)계엄이 일어나지 않도록 '계엄 대못 개헌'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책임을 한층 강화하는 경제 개헌과 분권형 4년 중임제·책임총리제를 근간으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제시했다. 그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번)조기 대선 이후의 다음 대선은 다음 총선(2028년)과 주기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기대선을 기정사실화 했다.
김 지사는 "광주가 선택하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제2의 노무현'의 기적으로 이기는 길, 새로운 길로 대한민국이 가도록 하는 데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후 김 지사는 광주지역 언론인들과 오찬을 한 후 518 버스'에 탑승, 광주시민과 소통했다.
김 지사는 시청까지 이동하는 30여 분 동안 518 버스 안에 탄 광주시민들과 최근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어 LH광주전남지역본부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사무실 을 찾아 박한신 대표 등 유가족 다섯 분과 대화를 나눴다. 김 지사는 희생자 애도와 함께 유가족을 위로하는 한편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이후 김 지사는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 및 광주시민회 관계자 100여명과 함께 광주시 동구 중심사길에 있는 노무현 표지석을 시작으로 '무등산 노무현의 길' 1km 구간을 약 1시간 동안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재임 중 시민들과 무등산 증심사~장불재를 등반했다. 대통령후보시절 '노풍'을 일으켜준 광주를 방문해서 "당선되면 시민들과 함께 무등산에 오르겠다"고 한 약속에 따른 것이다.
광주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무등산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당시 등반코스를 '무등산 노무현의 길'로 정했다.
김 지사는 노무현 길을 걸으며 기자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 기적을 만드셨다. 제2의 노무현의 기적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 여러분, 믿을 수 있는 정치인 얼마나 있나? 말로 하거나 약속한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정치인 몇 분이나 계시다고 생각하시나? 저는 ‘노무현의 기적’은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 실천에 옮길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지도자가 확장성을 넓힐 것이고 국민의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럼으로 국민 통합을 이룰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음 대통령은 시대정신인 우리 경제 문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해결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지도자가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기적을 다시 한번 이룰 수 있다.”며 대통령의 자질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김 지사는 이어진 광주방문 들째날인 14일 더불어민주당의 35조 추경안과 소식을 접하고 "더 힘들고 어려운 계층에 보다 촘촘하고 두텁게 지원하자"며 전국민 25만 원 지원에 대해 또다시 이견을 표명했다.
김 지사는 이날 광주경영자총협회 특강에서 "어제 다행스럽게도 민주당에서 추경안을 발표했다. 35조 추경 규모를 이야기했고 그중에 민생회복이 24조, 그리고 경제활성화에 11조 투자를 주장했더라"면서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제가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얘기를 해서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다만 김 지사는 "여전히 전국민에게 25만 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주자고 되어 있다고 들었다. 13조더라"며 "민생회복지원금을 주는 것은 찬성이지만 전 국민에게 똑같이 25만 원씩 나눠주는 것에 대해서는 (한계소비성향, 정책일관성 등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방법보다는 더 힘들고 어려운 계층에 보다 촘촘하고 두텁게 지원하자"며 재차 '두텁고 촘촘한 지원'을 제안했다. "소득분위 25% 이하에게 민생회복지원금을 준다면 1인당 100만 원씩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두텁고 촘촘하게' 지원해야 하는 이유도 자세히 설명했다.
김 지사는 "취약계층일수록 한계소비성향(소득이 올라가면 돈을 쓰는 비율)이 높다"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부자들이 소득이 늘어난다고 세 끼 먹을 밥을 네 끼를 먹겠는가? 양복을 하루에 한 개씩 사겠는가? 그렇지 않다. 부자들은 소득 늘어난다고, 그 돈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지적했다.
반면 취약계층이나 중산층은 소비를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김 지사의 진단이다.
김 지사는 "경제활성화, 투자활성화, 경제성장, 그리고 각 가계별로 이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끔 하는 측면에서 민생회복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것보다 어려운 분들에게 촘촘하고 두텁게 하자"고 거듭 주장했다.
김 지사는 '정책의 일관성' 문제도 제기했다.
김 지사는 "추경을 위해서는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을 양보 내지 철회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결국 끼워 넣었다"며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과 붙었다고 하는 것은, 민주당이 그만큼 신뢰를 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일관되게 우리 입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특강에서 김 지사는 "198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1%대 또는 그 이하의 성장률을 기록했을 때가 여섯 번이었는데, 그중 네 번은 경제위기(글로벌 경제위기 및 IMF),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시절이었다"고 설명했다.
"여섯 번 중 경제위기 때도 아니고, 팬데믹 때가 아닌 두 번이 바로 재작년하고 작년으로, 윤석열 정부 기간"이라며 김 지사는 윤석열 정부의 연속 1% 성장과 관련해 "아주 비참한 지경"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앞서 김 지사는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비상경영'을 위한 3가지 조치(슈퍼추경, 트럼프 2기 대응을 위한 수출안전판 구축, 기업 기살리기)를 제안하면서 '30조 슈퍼추경'을 정치권에서 처음으로 꺼냈다.
김 지사는 올해 1월 다시 '50조 추경'을 제안하면서 세 가지 용처를 제시하기도 했다.
아버지 일기장 공개한 김동연 "아주 '열혈 민주당원'이셨다"
김 지사는 이날 광주경영자총협회 특강에서 '아버지'에 대한 얘기로 시작했다. 김동연 지사가 아버지 얘기를 자세히 꺼낸 것은 드문 일이다.
김 지사는 먼저 빛이 바랜, 찢어진 가족사진 한 장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김 지사의 아버지는 33세, 김 지사가 11살에 작고했다. 32살에 홀로된 김 지사의 어머니가 4남매(김 지사가 맏이)를 홀로 키웠다.
김 지사는 "언젠가 한 번 옛날 서류를 뒤적이다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날짜가 단기 4293년(서기 1960년) 3월 11일이었다"면서 아버지의 일기장 내용을 공개했다.
김 지사에 따르면 "조그만 노트에 빼곡히 적힌 아버지의 일기를 봤더니 이렇게 쓰셨더라"면서 일부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958년도에 4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저희 고향(충북 음성)에서 출마한 민주당 후보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다는 일기였다. 하루에 7, 8곳을 다니고, 만나는 사람마다 코가 땅에 닿도록 '돈 없고, 빽 없고 권력 없는 민주당 후보가 불쌍하지 않냐. 찍어달라'고 선거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비가 와도 옷이 젖는지 모르고 하셨다"고 했다.
김 지사는 "자유당 시절 충청북도에서 민주당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척박한 환경이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주 '열혈 민주당원'이셨다"고 전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그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이겼다고 한다. 승리한 민주당 후보는 국회의원이 되어 서울로 가면서 김 지사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제일 수고 많았다. 영원히 못 잊을 거요"라고 고마워했다고 한다.
일기에 의하면, 곧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불과 서너 달 뒤에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는 것이다. 일기에는 김 지사 아버지의 그때 심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었다고 했다. "아주 절실하고 배반감에, '이게 꿈이냐 생시냐'면서 애통함과 분노에 찬 내용"이었다고 한다.
일기장에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선거 기간 중 치료 받다가 사망하자 비통한 심정을 드러낸 내용도 나온다.
김 지사는 "어머니가 (정계 입문을 고민할 당시) 저한테 '(김 지사가) 정치를 안 했으면 했지만, 하려거든 민주당 가야지. (아버지가) 그렇게 열정과 젊음을 바쳤는데'라고 하시더라"고 했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민주당과 대를 이어 맺은 깊고 깊은 인연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열혈 민주당원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생계가 막막해진 김 지사 가족은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으로 이사해 쫓기듯이 살았고, 2~3년 뒤에는 판잣집이 철거되어 강제 이주까지 당한다. 경기도 광주대단지라고 불리는 허허벌판이었다. 그곳에서 천막을 치고 살다가 김 지사가 덕수상고 3학년 재직 중 은행에 취직이 되면서 천막을 벗어날 기회를 잡게 된다.
이날 특강에서는 당시 김 지사의 은행수험표(사진)도 공개 됐다.
둘째날 일정으로 3·1운동 주도 수피아여고 찾은 김동연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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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사는"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했던 은숙. 평생 5월의 아픔을 안고 살아왔던 은숙의 학교가 수피아여고이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월 광주가 있기 이전, 1919년 광주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의 산실도 바로 이곳 수피아여고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3학년 학생으로 옥고를 치렀던 조아라 선생님의 기념관도 찾았다. '광주의 어머니' 소심당의 삶은 여성, 인권, 민주화에 대한 헌신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지사는 "그 숭고한 희생과 광주의 역사에 깊이 고개를 숙인다"고 덧붙였다.
광주의 어머니로 불리는 조아라 여사는 1912년 3월 28일 나주 반남면 대안리에서 조형률 장로와 김성은 여사 사이에 3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평생을 여성운동과 민주화·인권운동에 헌신하고 소외받는 계층을 대변해왔다. 수피아여고 재학시절인 1936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 지사는 천주교광주대교구청 옥현진 시몬 대주교 면담,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면담 등 광주 방문 이틀째 일정을 수행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